이야기

[소설] [단편] 설원의 음유시인: 용병의 이야기.

질문자 캐릭터 아이콘깡쥬르

추천수7

본 유저수8,688

작성 시간2018.04.03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스라이 사라질듯 사라지지않는 기억들의 편린 속에서.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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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자루를 쥔 손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더이상 몸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끝이 왔음을 짐작한다. 위태롭게 갈라진 석돌 위로 깊게 덮힌 눈 위를 자박자박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천근만근 무겁게 가라앉으려는 눈꺼풀에 맞선 힘 없는 저항을 포기했을 때 즈음, 나는 나의 두 귓가에 점점 녹아드는 소리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풀잎소리...

 

빗물에 젖어 늘어진 풀을 가볍게 즈려밟는 소리. 한차례 강수가 쏟아지고 난 뒤의 초원 위를 걸었을 때에야 날만한 소리였다. 고개를 치켜들고 싶었다. 그러나 목은 꺾이기라도 한듯 말을 듣지 않았다. 몸 전체가 마치 나의 몸이 아닌양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 몸에선 더이상 심장고동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지만, 눈 앞에 펼쳐져있을 드넓은 초원을 보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용을 써 간신히 눈꺼풀을 밀어내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것은 초록빛 드레스였다. 중간중간 흐릿해지려는 시야를 애써 바로잡으며,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결에 살랑이는 드레스 끝 부분의 레이스장식에 기대듯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여자아이의 음석이 아직 수명을 채 못다한 나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그녀가 누구인지. 너였구나. 알리샤..

 

" ...나왔어, 대장. 오랜만이지?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의 음성을 듣고, 미약하게나마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 뿐. 그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줄수도, 그녀에게 어머니의 품을 져 버린 못난 자식들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흐릿해져가는 시야속에서, 난 그녀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봉화는?

 

그녀는 마치 나의 생각과 질문을 읽기라도 한듯 입가에 어딘지 모를 쓸쓸해보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 네가 목숨 걸고 지켜낸 봉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 뭐야. 그 중에는 아주아주 강력해서 검은 마법사에게 대적할만한 '영웅'도 있었어. "

 

영웅... 나직이 생각했다. 그들이 도왔구나. 아주 대책없는 희망을 품은 건 아니였군. 마음속으로나마 자조섞인 웃음을 지어봤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른 누군가에게 신뢰를 기댔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자신과, 내 동료들에게까지도. 그러나 마지막 만큼은, 깊은 심연에 비해 턱없이 얇은 한줄기 빛이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그들 영웅의 이름을 읊었었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에 의해 세계가 다시금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바꿔말해 보잘 것 없는 나의 희생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소식을 안식속에 듣게 되었다. 짙은 안개가 겉히는 느낌을 온 영혼으로 느끼며.

 

"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

 

세찬 바람이 불어와 차갑게 식은 나의 몸을 훑고 지나갔고, 그에 맞추어 주변은 서서히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딱딱한 석재가 바닥을 뒤덮으며, 푸르렀던 하늘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것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한송이..

 

           두송이..

 

웃고 싶었다. 아무 제약없이,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으며, 그냥 웃고 싶었다. 차갑게 식은 나의 육신과는 다르게, 나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따뜻해져 있었다. 편안했고, 포근했다. 문득 찰나의 순간이라도 괜찮으니 이대로 있고 싶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의 의식은 자꾸만 염원의 안식 속으로 가자고 나를 보챘다.

 

" ... 잘해줬어, 대장. 이제 너도 편히 쉴 수 있겠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야. "

 

나의 고향... 그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온거다. 고향에 도착하면 분명, 헤이즈와 마일러가 또 이제서야 왔느냐며 나를 다그치겠지.

 

[ 안녕... 류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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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니, 드래곤 마스터니...

 

부르기도 어려운 그것들이 대체 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평범한 인간인 나는 눈 앞의 것이 아니면 볼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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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스라이 사라질듯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의 편린 속에서.

 

 

질문자 캐릭터
질문자 캐릭터 아이콘깡쥬르 Lv. 210 이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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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0

  • 캐릭터 아이콘닉넴없음001 2018.08.10

    ㅗㅜㅑ..

  • 캐릭터 아이콘나로G고수 2018.07.14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캐릭터 아이콘빽섭반반 2018.07.06

    대단해요..ㅠㅠ

  • 캐릭터 아이콘편듀통 2018.07.01

    원래 스토리에 류드의 생각만 살짝 추가하셨네 ㄷㄷ

  • 캐릭터 아이콘MOHAME 2018.06.26

    ??이거 설원의 음유시인 그거 베껴 쓴거아님???

  • 캐릭터 아이콘카드든큰형님 2018.06.13

    윽; 내 항마력이 버티지 못한다;;

  • 캐릭터 아이콘Nirope 2018.04.26

    오오와악 쩔어요..>!

  • 캐릭터 아이콘fgtuj24 2018.04.22

    와 진짜 잘쓰셨어요...!dd대단합니다

  • 캐릭터 아이콘칸트렌 2018.04.13

    우와아... 진짜로 잘 쓰셨네요. 존경합니다.

  • 캐릭터 아이콘폭격성공 2018.04.11

    ㅎㄱ.. 너무 잘 쓰셨네요.. 소름돋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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