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소설] 그 이후의 [블랙헤븐] 엉겁의 시간(오르카,스우-팬텀)

질문자 캐릭터 아이콘지하반납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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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시간2018.01.15

스우와 오르카. 오르카와 스우, 거대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을 가리키는 명확한 어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였지만 이 공식은 절대불변한 무언가처럼 새벽 이슬이 굴러다니는 흙으로 눅눅하게 새겨졌다.

 

"...스우."

 

작은 손의 끝에 스며든 차디찬 온도로.

 

 

 

오르카는 고개를 들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가늠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꽤나 시간이 흘렀음을 짐작하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뜨거운 무언가가 또 볼을 적셔 재빨리 손등을 올려 눈가를 빡빡 밀어낸 오르카는 안개처럼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점차 흐릿해져가는 그 이름을 허망하게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랬듯 함께 발을 맞춰 걸어 원점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려 했다. 늦을 거라는 예상은 아니, 일이 꼬여버릴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자신은 안이하게 굴고 있었다.

 

 

 

문득 한없이 끝을 모르는 아이처럼 굴며 해맑게 웃던 그때가 어둑한 그림자로 떠올랐다. 오르카의 텅 빈 동공이 슬며시 구르더니 곧 그 눈이 천천히
감겼다. 만약, 만약에 말이야. 스우.

 

"오르카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조르지만 않았다면 오르카와 스우가 같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만약 우리가. 우리가 말이야.

 

"정령으로 있었다면 내가 혼자 남겨질 일도 스우가 오르카 곁을 떠나는 일도 없었겠지?"

 

만약, 우리가.

 

 

 

"우리가...말이야."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흐르는 눈물에 목소리가 먹혔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몇 번을 빌고 되뇌인다해도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다시는 펼쳐질 수 없는 날임을 알고 있는데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스우."

 

또다시 뚝뚝 끊어지는 사과가 수도 없이 이어진다. 점차 잦아드는 것 같던 빗줄기가 다시금 날을 세워 땅으로 내리 꽂혔다. 오열하듯 뺨을 가르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계속해 바깥으로 밀어내던 오르카는 불현듯 밀려드는 묘한 기시감에 황급히 시선을 들었다. 주변을 살펴 보았지만 그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무도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오르카는 놀랐던 표정 대신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렸다.

 

 

 


지금 자신이 발을 붙이고 있는 이곳은 아주 오래 전, 스우와 자신이 어둠의 정령일 당시 머물던 숲이었다. 으슥하고 습기가 가득한 탓에 인간들조차 왕래하지 않아 쓸쓸하고 외로운. 그런 이곳에 지금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건 너무나 어색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쪼그려 앉으려던 찰나, 잠시나마 살결을 스쳤던 기척이 현실이었다는 듯 짧막한 음성이 귓가로 박혔다. 검은 마법사의 군단장 오르카.

 

 

 

"너 뭐야. 아직도 오르카를 그렇게 부르는 거야?"

 

 

"그 명칭이 너같은 녀석한테 제일 잘 어울려."

 

딱딱하기 그지없는 나무의 거친 결과 다른 무언가가 부드럽게 쓸리며 어둠에 숨겨져 있던 실루엣이 완전히 드러나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가 단번에 걷혔다.

 

"안 그래?"

 

"너..."

 

오르카의 동공이 혼란에 크게 뒤흔들렸다. 팬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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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캐릭터 아이콘지하반납팬텀 Lv. 200 스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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