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rage] 5화
다음 날 아침이 되기 무섭게, 제아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하루 빨리 레벨을 올려야 해!!'
어제 찾아놨던 야구방망이를 들고 집에서 나서려는 순간,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니?"
엄마의 말이 제아를 가로막았다.
"어제 못 놀았잖아요...그, 그래서 놀려구요!"
"지금 이 시간대엔 친구들이 다 자고 있을텐데?"
엄마가 시계를 가리켰고, 제아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7시 2분이였다. 주말의 학생들은 모두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였다.
"워, 원래 사람은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잖아요!"
"으음..."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 원래 주말에는 일찍 일어나려 하지 않았잖아.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도."
"!"
제아가 할 말은 더 이상 없었다.
"너, 뭔가 숨기는 거 있니? 너 친구들이랑 놀러 나가는 거 아니지!"
"아, 아니예요! 정말이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번에는 친구들이랑 일찍 놀러 가기로 했단 말이예요!"
"그럼, 이렇게 하자."
엄마가 제안을 했다.
"네 친구들 집에 전부 전화 걸어 봐. 한 명이라도 전화 받으면 나가게 해 줄게.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으면 넌 일주일 동안 외출 금지야."
충격적인 제안에 제아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전화...? 충분히 가능할 수 있으니까 해 볼까? 한 명쯤은 깨어 있겠지..?'
제아는 전화기 앞으로 향했다.
'친구네 부모님들이 받으면 어떡하지? 바꿔 달라 해야 하나? 자고 있다 그러면 어쩌지?'
제아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친구인 척 통화할까? 그러면 당황하실 텐데...깨워달라 할까? 주말에 일찍 깨운다는 건 실례잖아...'
제아는 수화기를 잠깐 들었다 다시 내려놓았다.
"...그냥 나중에 나갈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제아는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갔다.
'나 참...어머니랑 말싸움도 못 이기면서 블랙윙은 어떻게 이기겠다는 거야...'
제아는 침대 위에 풀썩 누워버렸다.
그러다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헉!"
제아가 벌떡 일어났다.
"지, 지금 몇 시..!!"
시간은 거의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 이제 나가도 되죠??"
제아가 급하게 방에서 뛰쳐나왔다.
"아직 아침도 안 먹었잖니? 곧 있음 점심 먹을 시간이고. 점심까지 먹고 나가면 안 되겠니?"
"그냥 친구들이랑 사먹을게요!! 다녀오겠습니다!!"
제아가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왔다.
최대한 빨리 달려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시청 근처까지 오긴 왔으나 이제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떻게 사람들이 뭐가 필요한 지 알고 도와주지?'
다짜고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도와줄 거 없나요?" 라거나 "도와줄게요!" 라고 말한다면 이상한 애가 될 게 뻔했다.
"....."
제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잘 찾아보면 분명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게 분명했다.
"....!"
저 멀리 에델슈타인 학교 병설 유치원의 선생님인 일렉스가 제아의 눈에 보였다.
제아는 병설 유치원 출신이였기에 일렉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일렉스를 싫어했지만 제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일렉스는 장갑을 끼고 물뿌리개와 모종삽 같은 원예도구들을 들고 유치원 앞 흙밭에 나와 있었다.
일렉스는 원예도구들을 잠시 내려놓고 새싹 그림이 그려져 있는 포대자루를 들여다보았다. 흙밭에 꽃을 심으려는 모양이였다.
"...어라..?"
일렉스는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래!'
제아는 일렉스에게로 다가갔다.
"저, 저기..."
"...응? 제아 아냐?"
일렉스는 제아를 반겼다.
"무슨 일이냐?"
제아는 일렉스에게 교장선생님께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엥? 교장 선생님이 마을 사람드르이 부탁을 들어주래서 왔다고? 헤에 그렇군. 그런 거구만."
일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마구마구 부탁해 주지!"
"네, 네!!"
이것이 제아가 바라던 거였지만 왠지 긴장이 되었다.
"뭐, 그래봤자 별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아, 예에.."
"요즘 들어 우리 유치원 앞이 이상하게 휑~해 보여서 꽃밭이라도 만들까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와준다는 사람이 있다니 잘 됐네."
흙밭은 누가 봐도 휑해 보일 만큼 텅 비어 있었다.
'꽃을 같이 심어달라는 부탁이려나...'
제아는 야구방망이를 괜히 들고 나왔나 싶었다.
"새싹이 다 떨어졌거든. 꽃밭에 심을 새싹을 좀 구해주지 않을래?"
"예? 그건 뭐..쉽죠."
제아는 자신이 지갑을 가지고 왔나 주머니를 확인했다.
"아니아니! 사오라는 게 아니고."
일렉스가 제아를 말렸다.
"왼쪽으로 나가면 에델슈타인 공원이 있는 건 알지?"
"네? 네..."
에델슈타인에는 넓은 공원이 하나 있지만 몬스터가 돌아다닐 때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닥 많이 다니지는 않는다.
"새싹 화분들을 사냥한 후에, 녀석들이 떨어뜨린 새싹을 주워다 주면 돼. 한...5개 정도만?"
"새, 새싹 화분이요..?"
제아도 공원에 갔을 때 새싹 화분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건...생명을 죽이는 거잖아요."
"조금이면 돼.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마을 아이들이 기뻐하지 않을까?"
제아는 그 말을 듣고 고민하다 공원으로 향했다.
"그럼 부탁할게!"
일렉스가 손을 흔들었다.
공원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새싹 화분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우으..."
새싹 화분들의 귀여운 눈은 제아의 마음이 약해지게 만들었다.
"너, 너희는..! 너희는 어차피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잖아...!"
자기최면을 걸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미, 미안하다..!!!"
제아는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새싹들을 사냥했다.
새싹 5개를 모으는 건 쉬웠다.
"끄흑..!"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채로 다시 일렉스에게 뛰어갔다.
"오오! 금방 구해왔구나! 굉장한 걸!"
일렉스는 기쁜 듯한 얼굴로 새싹을 받아들었다.
'...저 새싹을 심으면 몬스터가 자라나지 않을까...'
제아는 새싹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너 우냐?"
일렉스가 물었다.
"아, 아뇨..."
제아는 눈을 쓱쓱 비볐다.
"죄책감이 들었나 보구나. 그게 네가 착하다는 증거다."
일렉스가 제아를 쓰다듬었다.
"옛날에 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과 달리 요새는 마을 분위기도 우중충하니까..이런 거라도 해줘야 해지 않겠어? 아이들에게는 이런 게 필요한 법이잖아?"
제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넌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네...네?"
일렉스의 갑작스런 질문에 제아는 조금 놀랐다.
제아는 생각에 빠졌다.
새싹 구하기를 부탁받지 않았다면 화분들을 사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누군가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면 새싹 구하기를 부탁받지 않았을 것이고
레벨을 올리려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다면 레벨을 올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싸울 필요가 없었다면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고
마을이 평화로웠다면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마을의 평화요"
한참을 생각한 제아의 대답은 그러했다.
"역시 그렇지? 지금의 우리 마을은...너무 불안정해. 그러니 우리 같은 어른들이 더 힘을 써야 하는 거고...꽃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하는 일렉스의 표정도 씁쓸해 보였다.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마을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했었지?"
"네."
"그럼 이번에는 경찰서 앞에 있는 벨에게 가 보는 건 어때?"
벨은 에델슈타인의 경찰관 중 하나로, 겁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 녀석, 경찰인 주제에 엄청나게 겁쟁이니까 뭔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네. 그렇게 할 게요."
"오늘 고마웠다. 그럼 이만."
그러고 일렉스는 유치원 흙밭으로 돌아갔다.
'....경찰서라고 했지?'
제아는 경찰서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