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프렌즈 스토리 if 엔딩
“마법사 협회에서 결론이 나왔어요. 저희는 여기에서 퇴장. 더스트 관련은 따로 전담팀이 나온다네요.”
고양이로 변신한 릴리의 목소리는 기분탓인지 힘이 없으면서 미안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계의 학생... 정하나양이 돌아가기를 요청한 이상 저희가 여기에 머물 이유도 없기도 하고요. 사실 협회에서 결정이 난 이상 기억을 조작해서라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야 했겠지만요.”
“그래....”
언젠가 이런날이 올줄 알았기에 오랜만의 귀성은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되돌아가는 것을 망설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곳은 나의 세계가 아니었고 나에게는 동족을 부활시킨다는 왕으로서의 책무도 있었다. 하루빨리 돌아가는 걸 기대해야지 이곳에 대한 아쉬움을 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도 어째설까?
“저기, 어차피 기억을 지워야 하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연락하고 싶은 분이 있으시면....”
릴리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뒷말을 흐렸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이 작은 고양이가, 그리고 면식도 없었던 강대한 마법사가 나를 배려해 주고 있다는 것이 여실이 느껴져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고마움에 릴리의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가르릉 소리를 냈다.
이제는 익숙하게 교복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고 주소록 아이콘을 눌렀다. 고작 몇 주 밖에 되지 않았건만 이 자그마한 기계에도 이 옷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사실이 어쩐지 평소와 달리 서글프게 다가왔다.
펼쳐진 주소록에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알게된 사람과 친해진 사람의 연락처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하나같이 메이플 월드에서 보아왔던 사람들과 닮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었고 그렇기에 이들 또한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한명 한명 음미하듯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살펴보았다. 가벼운 상태 메시지들 또한 너무나 그 사람들다워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윽고 모든 주소록을 다 보았을 때 마지막으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을 결정했다.
잠시 폰에서 시선을 떼고 릴리를 보며 살짝 미소지어주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정확히는 누르려 했다. 갑작스럽게 전화가 오지 않았었다면. 전화는 시그너스에게서 온것이었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해야될까.”
전화를 걸려는 타이밍에 걸려온 전화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겠지.
“여보세요? 저 시그너스에요.”
“응, 알고있어.”
“후후훗, 역시 재미있으시네요. 그보다 지금 어디세요?”
어디가 재미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그너스가 재미있어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다만 평소와 다르게 어디 있는지를 묻는걸 보아 날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이고 하니 평소라면 방송을 했겠지만 지금 나는 밖에 나와 있었다. 방송을 해도 오지 않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더더욱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가는 상황에 즐거움과 동시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공원 쪽이야. 일이 좀 있어서.”
“식사도 같이 안하시더니.. 무슨일이신가요?”
“아니, 뭐 좀 그냥.”
대답이 궁하자 얼버무리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스트 사냥 중이었다는 말을 할 수 는 없으니 딱히 이 이상 좋은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여하튼 별로 멀지 않는 곳이군요. 죄송하지만 지금 학교로 좀 와주실수 있나요?”
“어, 왜? 무슨일 있어?”
뭔가 또 곤란한 일이 생기기라도 한걸까? 잠시 후에 해어져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서 핸드폰 고리로 변화시켜놓은 듀얼 보우건을 움켜쥐었다. 이곳에서 무력을 쓸 만한 일은 좀처럼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음.. 그게 일이 있기는 한데 제 일이 아니라... 전달이 늦었다고 해야되나....”
“시그너스?”
평소 그녀답지 않게 우물거리는 말에 걱정과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전화 너머지만 그녀에게도 그 기색이 전해졌는지 우물거림을 멈추고선 한숨과 함께 말을 했다.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으셔야 해요. 지금 다들 강당에 모여있어요.”
어영부영 대답을 하고나서 전화를 끊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상이 아니라 최근들어 교내 잡무를 해결해준 것에 대한 감사패를 증정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쪽이건 최후의 통화를 끝으로 이곳에서 떠나려고 했던 내겐 어이없을 정도로 타이밍 좋은 이야기면서도 반대로 서글플 정도로 의미없는 일이기도 했다.
황망한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보자 그녀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잠시 다녀오는 것 정도야 문제는 없겠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정이 더 깊어지면 괴로워지겠지만 오히려 잘됐어. 솔직히 누구 한명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게 걸렸는데 이 기회에 작별인사나 할게.”
전력을 다하면 버스보다 달리는 쪽이 빨랐다. 신발끈을 꽉 조이고는 살짝 심호흡을 했다. 방금전 더스트 무리를 처리하긴 했어도 달리는 것 정도는 문제 없었다. 뛰어갈 루트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발을 튕겼다.
강당에 다가서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시그너스가 전화한지 10분정도가 지나있었다. 거리를 생각하면 빨리 온 것이지만 전교생을 모아놓고서 기다리게 한 시간치고는 꽤 길다. 실제로도 문 너머에서는 짜증 섞인 목소리도 간간히 흘러나왔다. 더 이상 기다리게 했다가는 작별 인사를 해야 될 사람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할 것 같아 곧바로 강당의 문을 열었다.
쿠궁
닫혀있던 강당의 문이 열리자 일순간 조용해지면서 내게 시선이 쏠렸다. 낯익은 시선도 낯선 시선도 섞여있었지만 전부 무시하고 단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는지 나만 있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감사패라는 말처럼 상장의 내용과 건네주는 선생님의 말은 내가 전학 오고 나서 해결하고 도와줬던 일에 대한 칭찬과 감사의 말이었다. 덩달아 받은 유리 커팅 장식물에는 내 이름과 함께 감사패라 세겨져 있었다. 이윽고 내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아, 방금 상을 받은 저입니다.”
시상식 동안 잠시 소란스러웠던 강당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내가 이렇게나 영향력이 있었나 조금 의아했지만 시끄러운 것 보단 나았기에 오면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풀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 서면 상을 받은 소감이나 감사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저는 조금 다른 것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한호흡 쉬었다. 제지가 들어올 만한 말이라 잠시 기다렸지만 교사진들은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 저 앞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시그너스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몰랐으나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 저는 이곳에 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단정하는 말에 헛숨을 들이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이곳에 오게된 계기는 저와 관련없는 누군가의 실수 때문이었고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은 누군가의 어리광 때문이었습니다.”
메이플 월드와 이곳이 연결된 것은 경계의 마법사 엘윈의 실수때문이었고 이 학교에 온 것은 이계의 학생 - 정하나의 어리광 때문이었다. 미적지근하고 메이플월드와 공통점이라곤 거의 없는 또다른 세계.
“억지로 일을 떠맡은 뒤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도 불편한 것 투성이였습니다. 원래 살던곳과 너무도 다른 이곳은 기본 상식과 말조차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해하기도 싫었습니다. 저는 이방인이고 누군가의 어리광이 끝나는 대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오직 그것 뿐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났다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이유도 없었다. 불안감에 눈빛이 흔들리는 시그너스에게 살짝 웃어주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냥 시간만 때우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야겠다는 생각은 전학 첫날부터 깨졌습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 했것만 오자마자 운명의 전학생이니 하는 소동에 휘말렸고 아무하고 엮이지 않으려 했것만 어느새 제 주변에는 한명 두명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시그너스를 주축으로 같이 어울리게 된 사람들을 한명씩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냉철하게 있는 사람도, 민망함에 뺨을 긁적이는 사람도,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드는 사람도, 그저 씩 웃고 있는 사람도 가지각생이었지만 내 학교생활의 즐거움은 모두 이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즐거운 기분에 한층 더 열기를 싣고 말을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온통 짜증스러운 것들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걱정하고, 화도 내고, 웃고, 같이 바보 같은 것도 하며, 때로는 무서워하기도 하고 진실을 알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며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애교를 부려보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 사람이 워낙 잘생겼으니 어쩔 수 없었다. 쿨 뷰티의 이미지도 무너뜨릴 만큼 굉장했으니까.
살짝 붉어진 뺨을 가라앉혔다. 가장 중요한 심경고백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곳이 아닌 이곳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학교로 가는 길에 떡꼬치를 사서 아침을 해결하고, 학교에서는 수업을 성실히 듣거나, 자거나, 떠들기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시그너스와 그 일당들(웃음)과 밥을 먹고 어제 봤던 드라마나 교내에 떠도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방과 후에는 다 같이 어디론가 놀러가거나 원래 있던 곳에서 건너온 귀찮은 일을 해결하거나 하면서 반복되는 생활이 제게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고작 몇 주밖에 되지 않았것만 아주 오래전부터 마치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 마냥 이 일상에 익숙해졌다. 더스트를 사냥하는 것을 제외하면 나도 이 세계의 일원인양, 평범한 학생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처음이 최악이었기에 일상이 되어버릴 만큼 당연해진 생활이 더욱 사랑스럽게 여겨졌고 그랬기에 여러분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이 시간은 제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말을 마치자 객석이 술렁거렸다. 아니, 어떻게 보면 아주 고요했다.
평소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아주 가끔 미소정도만 짓던 그녀가 울고 있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맑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한번도 ** 못했던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음에도 그녀의 웃음은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그 밝은 웃음에 그 얼굴을 보는 모두가 덩달아 슬퍼지고 기뻐했다.
적어도 그녀의 애정만큼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이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그곳으로 돌아가면 여기 있는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겠지요. 그렇지만 저 운명의 전학생 아이누미웰 메르세데스는 정말로 여러분과 함께한 이 시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아이누미웰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시그너스와 오르카가 다가왔지만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부드럽게 웃으면서 핸드폰 고리로 축소시켜놓은 듀얼 보우건을 하나씩 그녀들에게 주었다. 비록 예비가 있다고 한들 무기는 전사의 동반자이자 생명이었다.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겠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꼭 주고 싶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사람들을 지나쳐 강당 밖으로 나갔다.
신비로운 밝은 빛이 지나가고 남은 것은 어쩐지 모르게 울고 있는 시그너스 일행과 박수를 치고 있는 일반 학생들 뿐이었다.
노란악마S2 2015.10.10
잘쓰셨네요
레어닉좀줘라 2015.09.24
솔직히 프렌즈 스토리가 이런식으로 이별하는 편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던건 있었슴당 뭔가 하마편에서 모든게 끝일것 같다가 갑자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끝을 밴드로 추억을 만든다는걸로 맺었지만 뭔가 모자른 느낌.. 으으
dfzkdlwjwpfh 2015.09.23
오... 잘만드셨네여
스우아니에요 2015.09.15
아.. 이글을 읽고나니 프렌즈스토리 깻을때가 생각나네요.. 추천!